홍준일 뭐해/살아온 이야기

시대정신 그리고 청년

세상을 널리 이롭게하라 2010. 7. 20.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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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 그리고 청년


대학 3학년 이제 학생회의 지도부에 참여하게 되었고 동아리연합회 부회장이라는 직함을 갖게된다. 그때부터 나는 학교에 유명한 싸움꾼으로 알려지고 학교에서 싸움이 생기면 항상 선두에서 그리고 어떤 때는 전체 대열을 지휘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3학년 봄 ‘반민자당 집회’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생애 처음 구속된다. 서울구치소로 향하는 매 순간 순간마다 떨리는 가슴을 안고 국가기관의 법적 제도적 절차에 순응하며 인간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당시 처음으로 뼈저리게 깨달았다. 잘못된 국가권력에 앞에 처참히 깨어지는 자존심과 신념은 나를 더 단단하게 단련시켰고, 더욱 더 잘못된 권력과의 투쟁을 결의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의 용기라면 지금도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3개월정도의 수감생활을 끝내고 나온 후 곧 바로 반민자당특별위원회 위원장, 총학생회 정치사업국장 등을 맡으며 바로 수배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때부터 2년간의 수배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지금은 지나간 일이만 피끓는 청춘에 학교 밖을 나가지 못하고 2년간을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다. 간혹 집회때나 몰래 학교밖을 나가기도 했지만 그 때의 숨막히는 상황들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어떤때는 주변의 강도사건의 용의자로 오인되어 끌려가다 풀려나고, 체포조에 의해 미행에 걸려 육박전도 해보고, 버스에서 체포조의 미행을 눈치채고 뛰어내리기도 하고 마치 영화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장면들을 경험했다. 지금도 그때를 기억하면 뜨거운 피가 흐른다.


그리고 김염삼정부가 들어서는 대통령선거가 있었고, 나는 아버지의 권유로 수배중임에도 군대에 갔다. 그리고 6개월 후 군대에서 그 사실이 밝혀졌고 사단헌병대에서 기무사의 수사를 받았다. 군 역창에서 재판을 위해 대기하고 있던 중 군검찰의 기소유예로 정상적인 군생활로 복귀할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얘기지만 당시 김영삼정부가 들어서고 민주화운동 관련자에 대한 수배해제 및 대사면이 진행되었고, 다행히 나는 기소유예 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 이후 나와 관련된 전과는 모두가 사면복권 되었다. 언제가 아버지가 김영삼대통령을 칭찬한 적이 있었는데 나도 혜택을 받아서 그런지 김영삼대통령에 대한 좋은 인상이 있다. 과거의 지나온 얘기지만 지금 생각해도 당시의 상황을 내가 어떻게 혜쳐나갔는지 지금도 의문이고, 어디서 그러한 의지가 나왔는지 스스로 생각해도 놀랍다. 아마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상황이었고, 우리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를 만드는데 아빠가 참가했었다는 뿌듯함도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국민은 항상 현명하며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를 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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