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포럼을 준비하며
노무현 대통령 당선 그리고 우리들은 많은 선택의 갈림길에 놓였다. 청와대에 들어가는 사람, 새천년민주당의 당직자, 정치조직을 만드는 사람, 지역으로 내려가 출마를 준비하는 사람 등 당시 나 역시 많은 고민을 했다. 그리고 지역출마를 결정했다. 겁 없는 결정을 내렸다. 그때 나이 35세였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대통령의 당선만으로 새로운 정치와 정치혁명이 가능하지 않으며, 노무현대통령과 함께했던 사람들이 지역으로 내려가 출마하고 새로운 정치혁명과 정당개혁을 위한 노력에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많은 사람들이 지역으로 내려갔다.
결국, 나는 강릉경찰서 앞에 ‘강릉포럼’이라는 사무실을 개소하고,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얘기하는 새로운 작업을 시작했다. 강릉의 민주개혁세력을 결집시키고 새로운 시민사회세력이 강릉정치의 중심으로 등장하기위한 발판을 만드는 것이었다. 매일 매일 새천년민주당의 지구당을 방문하고, 민주개혁인사들과 지역의 지인들을 만나 새로운 정치를 역설하며 동참을 호소했다. 개소식이 있던 날 50여명의 참석자와 몇몇의 지역정치인, 언론사 기자등의 참여속에 행사를 무사히 치루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너무 준비없이 시작한 새로운 작업이 얼마나 힘든 작업인지 깨닫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서울에서는 새천년민주장의 분당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후 한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분당은 기정사실화되었고 새로운 정당의 창당작업이 준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참여를 권유했다. 지역에서 악전고투하던 나로서는 고민할 수 밖에 없었고, 마침 선배 한분이 지역출마를 준비하며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새로운 정당의 창당을 위한 작업에 동참하기로 결정한다. 지금도 아쉬운 것은 당시 서울로 올라가 창당작업에 참여하더라도 ‘강릉포럼’의 불씨를 유지하고 지속적으로 활동했어야 했다는 미련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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