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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뭐라고 불러야 하나? “북한인가, 북측인가, 조선인가?” 본문

세널리 정치/집중분석

북한 뭐라고 불러야 하나? “북한인가, 북측인가, 조선인가?”

세널리 2026. 5. 28.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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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 논쟁에 숨어 있는 한국 사회의 분단 현실

최근 North Korea women’s national football team 관련 논란은 단순한 스포츠 이야기를 넘어 한국 사회의 오래된 질문 하나를 다시 꺼내 들게 만들었다. 우리는 북한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북한”이라고 해야 하나, “북측”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국제대회처럼 “조선” 혹은 “DPRK(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라고 불러야 하나. 겉으로 보면 단순한 호칭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분단체제와 민족 정체성, 냉전의 기억, 그리고 오늘날 한국 정치의 이념 지형이 모두 얽혀 있는 문제다.



한국 사회에서 북한 호칭 논쟁은 반복적으로 등장해 왔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때마다 “북측”이라는 표현이 늘어나고,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면 다시 “북한” 혹은 더 강경한 표현이 많아진다. 스포츠 국제대회에서는 또 다른 충돌이 생긴다. 국제기구는 공식적으로 DPR Korea를 사용하지만, 한국 언론은 대부분 “북한”이라 부르고, 북한 스스로는 “조선”이라고 부른다. 결국 같은 대상을 두고 서로 다른 이름이 충돌하는 셈이다.

진보적 관점에서 보면 이 문제는 단순히 “올바른 표현 하나를 정하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어떤 표현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한국 사회가 북한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가 드러난다. 흥미로운 점은 진보 진영 내부에서도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하나로 통일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우선 가장 현실적인 입장은 “북한”이라는 표현 자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흐름이다. 실제로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북한”은 이미 하나의 사회적 공통언어처럼 자리 잡았다. 언론, 교과서, 학술 논문, 방송 대부분이 이 표현을 사용한다. 진보 진영 내부에서도 굳이 일상언어를 바꾸는 것이 본질은 아니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중요한 것은 단어가 아니라 정책이라는 주장이다. “북한”이라고 부르면서도 평화공존 정책을 추진할 수 있고, 반대로 “북측”이라고 부르면서도 실제로는 적대적 태도를 취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언어의 형식보다 실제 정치적 태도라는 현실주의적 접근이다.

반면 전통적인 통일운동 계열이나 평화운동 진영에서는 “북측”이라는 표현을 선호하는 흐름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들에게 “북한”은 이미 상대를 완전히 다른 국가나 타자로 고정시키는 느낌이 강하다. 반면 “북측”은 남북관계를 하나의 민족 내부 관계로 바라보는 표현이다. 실제로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 화해 분위기가 높아졌던 시기에는 “남측·북측”이라는 표현이 공식 문서와 언론에서 자주 등장했다. 여기에는 언어 자체가 평화의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철학이 깔려 있다.

냉전 시기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북괴”, “괴뢰”, “적” 같은 적대적 표현을 사용해 왔다. 진보 진영은 이런 언어가 상대를 인간이 아닌 절대적 적으로 규정하면서 전쟁과 증오를 강화했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적대적 언어를 줄이는 것 자체가 평화체제를 만드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언어 역시 정치라는 관점이다.

최근 젊은 세대나 국제주의 성향의 진보층에서는 또 다른 접근도 등장한다. 국제 스포츠나 외교에서는 상대의 공식 국호와 자칭을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나 국제축구연맹(FIFA) 등은 공식적으로 DPR Korea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국제사회에서는 상대 국가가 스스로 사용하는 명칭을 존중하는 것이 기본 관례에 가깝다. 따라서 국제대회에서는 “조선” 혹은 DPRK 표기를 사용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진보적 관점이 곧 북한 체제에 대한 무비판적 태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최근 진보 내부에서는 북한의 인권 문제와 세습체제, 폐쇄적 정치구조에 대한 비판이 더 강해지는 흐름도 나타난다. 과거처럼 북한을 일방적으로 낭만화하거나 이상화하는 흐름은 상당 부분 약화됐다. 오늘날 진보 진영 내부에서 점점 힘을 얻는 것은 “비판적 평화주의”에 가깝다.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혐오와 적대의 언어를 강화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북한 호칭 논쟁이 과열되는 이유는 결국 분단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일처럼 통일이 이뤄졌거나, 혹은 완전히 별개의 국가로 정착한 관계였다면 이런 논쟁은 지금처럼 첨예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여전히 헌법상 북한을 국가로 완전히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국제사회에서는 사실상 별개의 체제로 공존하고 있다. 이 모순된 현실이 언어의 혼란으로 이어진다.

스포츠 영역에서 논란이 더 커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스포츠는 국기와 국가, 애국심과 국가 정체성이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공간이다. 그래서 호칭 하나도 단순한 명칭이 아니라 정치적 상징으로 소비된다. 남북관계가 악화된 시기에는 “북측”이라는 표현이 친북 논란으로 이어지고, 반대로 “북한”이라는 표현은 지나치게 냉전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결국 단어 자체보다 한국 사회 내부의 정치적 긴장이 더 크게 작동하는 셈이다.

어쩌면 지금 필요한 것은 하나의 표현을 강요하는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일반 기사에서는 “북한”을 쓰되, 남북관계와 교류 맥락에서는 “북측”을 사용할 수 있고, 국제대회에서는 공식 국호를 존중하는 식의 다층적 접근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표현을 사용하든 상대를 혐오와 적대의 대상으로만 규정하지 않는 성숙한 태도다.

결국 북한 호칭 논쟁은 단순한 언어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분단과 냉전을 아직 얼마나 깊이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그리고 그 논쟁 속에는 “우리는 앞으로 어떤 한반도를 만들고 싶은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이 숨어 있다.

함께 생각해 볼 문제

1. 북한 호칭 논쟁은 실제로 세대 갈등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까?

2. 남북관계가 다시 개선된다면 한국 사회의 언어와 표현도 달라질 가능성이 있을까?

3. 스포츠와 문화 영역에서 남북 교류가 다시 확대된다면 호칭 논쟁은 줄어들까, 아니면 더 커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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