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연대해 총선 이기면 박근혜 위력 잃을 것" | |
[한겨레가 만난 사람] 시민주권 공동대표 이해찬 전 총리 |
이명박 대통령한테서 민심이 떠나고 레임덕이 본격화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범야권의 2012년 대선 전망은 밝지 않다. 무엇보다 유시민, 손학규, 정동영, 정세균, 천정배, 이정희, 노회찬, 심상정의 지지율을 다 합쳐도 박근혜 한 사람을 당해내지 못하는 실정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이해찬 전 국무총리한테서 2012년 민주·진보 진영의 집권 경로와 전략을 들어봤다. 그는 범야권 최고의 선거기획가이자 정책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지난 20여년 동안 총선·지방선거·대선 등 거의 모든 선거의 기획 책임자를 했다. 또한 당 정책위의장 세 차례에 교육부 장관, 국무총리를 지내 정책 분야 ‘가방끈’이 누구보다 길다. 2008년 민주당을 이탈한 그는 요즘 시민정치운동을 표방하는 시민주권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자신은 총선이든 대선이든 출마하지 않겠다고 하니 ‘집권 방도’를 논할 공정성을 그런대로 갖췄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그의 결론은 대선을 보지 말고 총선을 보라는 것이다. 범야권이 총선에서 승리하면 정권교체 가능성이 부쩍 높아지면서 야권 주자들의 주가도 덩달아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한나라당과 박근혜 대세론이 크게 위축되면서 여야가 겨뤄볼 만한 대선 구도가 새로 짜이리라고 한다. 한마디로 간추리면 “범야권이 연대를 잘해 총선을 이기는 것이 박근혜 대세론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인터뷰는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그의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인터뷰/박창식 논설위원 cspcsp@hani.co.kr
한나라, 총선 무너지면 내분위기 맞을것
연대때 대선 연정 감안해 정책조율 필요
“종편 사업권 회수를 선거 공약 내걸어야
“권력 누수가 생길까봐 위악을 떠는 현상마저 나오는 것 같다. 지난번 국회 날치기 때 김성회 의원은 그냥 미는 정도의 몸싸움이 아니라 조폭들이나 하는 폭력을 행사했다. 검사 출신의 민정수석을 감사원장에 앉히려 한 것은 공무원 사회를 범죄집단으로 보는 것이다. 공무원과 국가에 대한 모독이다. 종합편성채널을 네 개나 내주고, 망하면 서로 엠앤에이(인수합병) 하면 될 것 아니냐는 식으로 하는데 이런 균형없는 사고는 옳지 않다. 노태우 정권은 정통성이 없으니까 (권력 행사를) 조심했는데, 지금은 절제도 전혀 하지 않는 위험한 집단이다. 노태우 정권만도 못하다.”
-민심의 흐름을 어떻게 읽고 있나? 표면상 여론과 바닥 민심이 다르다는 이야기가 많다.
“지난해 지방선거를 전후해 중대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첫째로 김두관 후보가 무소속 연대로 경남지사에 당선됐다. 3당 합당으로 사라졌던 부산·경남의 진보적 성향이 처음으로 되살아났다. 이건 지역주의를 제어할 수 있는 큰 변화다. 둘째, (정부여당이) 천안함 사건으로 선거국면을 도배했지만 무상급식이 훨씬 호응을 받았다. 심층조사를 해봐도 개발이나 토건보다는 삶의 질 쪽으로 유권자 요구가 바뀌고 있다. 셋째, 대형 신문들이 아무리 여론몰이를 해도 먹히지 않게 됐다. 매스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이제는 트위터와 같은 미니커뮤니케이션이 숫자도 많고 속도도 빠르다. 독일 개념으로 레벤스벨트, 즉 생활세계와 커뮤니케이션 환경이 바뀌고 있다. 그런 변화가 특히 20~30대에서 오고 있다. 이런 흐름을 감안해 올해에 연대와 소통을 잘 준비하면 내년 총선에서 큰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2012년에 야당이 정권을 되찾을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 박근혜 대세론이 강력하다.
“1992년부터 2007년 대선까지 늘 보수 대세론이 있었다. 그 가운데 92년 와이에스, 2007년 이명박 대세론은 먹혔고, 1997년과 2002년은 대세론이 안 먹히고 막판에 뒤집혔다. 대세론대로 되는 게 아니다. 이번에는 총선 결과에 따라 지형이 크게 달라진다. 내년에 총선이 4월에 있고 불과 여덟달 만에 대선이 있기 때문에 총선에서 다수를 차지하지 못한 쪽은 무너지게 돼 있다. 한나라당이 지금 150석을 훨씬 넘는데 그게 120~130석으로 줄면 내분도 생길 것이다.”
-사람들은 총선보다는 대선에 관심이 많다. 대선주자 지지율을 열심히 비교해보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민주개혁진영이 연합해서 총선에서 과반수를 넘기면 박근혜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전체가 어려워질 것이다. 곧바로 대통령 선거인데 국민들이 다수파가 아닌 소수파 대통령을 뽑는 것을 부담스러워할 것이다. 대통령과 국회가 같이 가야 한다고 보는 거다.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하면 박근혜 대세론도 위력을 못 갖는다. 박근혜로 몰고 가는 일종의 여론몰이를 극복하는 전략으로도 총선에서 이겨야 한다. 민주개혁진영이 총선에서 이기면 대선에서도 이기자는 기운이 결집될 것이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이기고 나니 연대만 잘하면 다시 집권할 수도 있겠다는 긍정적인 생각이 생기는 것처럼…. 그리고 박근혜가 능력이 좋아서 그런 지지율이 나오는 건 아니잖나. 오히려 능력으로만 보면 야당이 경험이 있기 때문에 좋은 사람이 많다.”
-총선은 야권 연대가 어려울 것이라고도 한다.
“금년 한해 동안에 지역 공동체 차원에서 (여러 야당과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해) 단일 후보를 뽑아내는, 미국 민주당의 오픈 프라이머리 같은 틀을 만들어야 한다. 각 정당 지도부와 지역 공동체 차원에서 모두 그것을 준비해야 한다. (많은 지역에서) 전면적으로 되면 좋지만 다 되지 못하더라도 선의의 경쟁을 할 후보자들이 있는 지역에서라도 그게 이뤄지면 된다. 그걸 올해에 만드는 게 중요하다.”
-지역 단위 연대 틀을 어떻게 실현해갈 수 있을까?
(강연 초청 공문을 주머니에서 꺼내 보여주면서) “지난번 지방선거 때 고양시의 야당들과 시민사회가 무지개 연대를 잘해서 모든 선거를 다 이겼다. 그런 경험을 가지고 지역 단위에서 총선 후보를 단일화하기 위한 연대와 소통 모임을 해보겠다면서 관련된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제가 많이 받고 있다. 이런 흐름을 시민운동으로 잘 살려나가면 수도권과 부산·경남에서 성과를 낼 가능성이 크다.”
-야권 단일정당을 만들자는 주장이 있다.
“단일 정당을 만들면 제일 좋다. 그러나 여러 입장들을 보면 단일 정당을 만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또한 그게 안된다고 단일화를 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 문제를 배타적으로 보지 말고 같은 취지라고 생각하고 논의를 성숙시켜가야 한다.”
-범야권이 2012년에 어떠한 정책 담론을 준비해야 할까?
“평화와 삶의 질 두 가지가 필수적이다. 한반도가 분단 체제이기 때문에 평화 문제가 중요하다. 또한 경제발전이 이 정도 됐기 때문에 고도성장에서 삶의 질을 중시하는 단계로 넘어왔다. 삶의 질(복지) 가운데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일자리다.”
-보수진영은 ‘부자한테 공짜 점심을 줄 필요는 없다’며 진보진영의 보편적 복지론을 비판한다.
“복지는 시혜가 아니다. 공동체 안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요구할 권리이다. 상하 계층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이라면 모두한테 다 적용되는 것이다. (소득계층) 상위 20%가 세금을 안 내면서 국가로부터 복지 서비스도 안 받는 게 아니라, 세금을 소득별로 더 낼 사람은 더 내고 복지는 같은 조건으로 받는 게 유럽사회의 기본원리다. 자기들은 세금을 (충분히) 안 내면서 복지 서비스를 하위 80%에게만 준다? 그것은 사회를 통합하는 게 아니라 차별하는 잘못된 사고방식이다. 세금을 안 내려는 논리의 변형이다. 그런 식으로 복지를 하는 나라가 어디 있나.”
‘평화’‘삶의 질’ 문제 선거때 필수 화두
보편적 복지 실현, 세율조정으로 가능
“MB정권, 종편·인사 등 절제 전혀 안해”
-야당 일각에선 보편적 복지를 하기 위해 부유세를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세금을 만들 때는 명분을 잘 생각해야 한다. 토지 투기로 얻은 부에 과세한 종부세도 하루아침에 무너뜨렸다. 부유세 개념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는 철학으로 가는 것이라 옳지 않다. 조세원리에 따라 사회통합적 차원에서 소득비례별로 세율을 달리하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
-전체적으로 세율을 재조정할 필요성은 있는 것 아닌가?
“있다. 보편적 복지를 하려면 담세율이 30~35%가 되어야 한다. 유럽의 스웨덴이나 영국, 덴마크의 담세율이 30~35%다. 우리나라 현재 담세율은 25% 수준이다. 담세율을 최소한 5~10%는 올려야 한다. (보편적 복지를) 온전히 하려면 궁극적으로 50조 내지 100조원의 추가 재원이 필요하다. 그러면 어떻게 할 거냐? 제 경험으로는 (재정 운용의) 효율을 2.5~3% 올리는 건 어렵지 않다. 지금의 세원을 갖고도 세율을 조정하면 좀더 나올 수 있다. 동북아 평화체제로 전환되어 군축이 되면 국방비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 우리는 국방비로 연간 300억달러, 30조원가량을 쓰는데 영국, 프랑스, 독일은 150억달러밖에 안 쓴다. 적어도 여기서 10조원은 염출할 수 있다. 그래서 평화 담론이 굉장히 중요하다.”
-야권이 2012년 대선에서 궁극적으로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연립정부 형태를 추구하게 될 것 같다.
“당연히 그렇지 않겠나. 총선에서 단일화해야 이길 수 있고 그 연장선에서 대선후보도 단일화해야 할 것 아닌가. 민주당과 진보정당들은 대선 연정을 감안해 정책부터 조율해나가야 한다. 에프티에이, 보편적 복지 수준, 나라의 경제발전 전망과 경로에도 차이가 있지 않나. 그것을 금년에 많이 조정해야 한다. 그러면서 보궐선거부터 공동으로 치러나가는 게 제일 좋다.”
-상설적인 야권 연대 틀이 필요한 건가?
“만들어야 한다. 시민주권에서 오는 28일 야4당을 상대로 연대의 틀과 방향 문제를 토론해보자고 제안했다.”
-야권 대선주자들이 약체이니 김두관·안희정 지사,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등 새로운 얼굴들도 레이스에 뛰어들도록 하자는 견해가 있다.
“김두관이나 안희정 지사가 2년 만에 현직을 그만두고 대선에 도전한다면 국민들이 성급하다고 느낄 가능성이 크다. 그분들은 2017년에 대비해 지사로서 역량을 잘 보여주는 게 진보진영의 2017년 집권을 위해 중요하다. 지사직을 하지 않는 유시민이나 이정희 등은 과감하게 도전하는 게 좋다. 왜냐면 우리 사회가 너무 장로정치다. 정치인 평균 나이로 보면 우리가 굉장히 많다. 유럽에서 40대 총리가 나오고 미국도 40대가 대통령을 하지 않나.”
-이 전 총리는 민주·진보 집권을 위해 무슨 일을 할 건가?
“연대기구를 만들어 운영하고 후보 단일화를 해내려고 한다. 내년 총선에서 이길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본인이 출마할 생각은? 총선이든 대선이든.
(웃고 손을 내저으며) “그럴 생각은 없다.”
기자는 질문을 마치면서 “덧붙이고 싶은” 것 여부를 물었다. 그러자 이 전 총리는 미리 준비한 메모를 보면서 “범야권이 다음 대선 공약으로 종편 주파수 회수”를 내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종편 도입의 폐해는 누구나 말한다. 하지만 5년 단위로 사업권 갱신 심사를 하는 방송제도에 주목해 2015년에 종편 주파수를 회수한다는, 구체적인 정책 방향을 제시한 것은 유력한 정치인 가운데 그가 처음이다.
“종편은 언론 난개발이다. 4개나 나와서 다 망하지 않겠냐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제가 볼 때는 이 사람들 생리상 절대 망할 사람들이 아니다. 재벌을 잡든지 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유지할 것이다. 그러면서 잘못된 여론몰이가 심해질 것이다. 이건 국민들이 갖고 있는 국가주파수가 사유화된 것으로 아주 잘못된 것이다. 이런 종편은 존속하는 것 자체가 암적인 존재가 되는 거다. 다시 집권해서 바로잡아야 한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주파수를 회수하는 방법이 있겠고, 아니면 방송통신위원회를 여론 다양성과 품위,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다시 만드는 방법이 있겠다. 대선 공약으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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