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정교과서 빌미로 이념투쟁 즉각 중단
- 학계와 시민사회가 중심되어 해결해야 ‘분열’방지
박근혜 대통령은 13일 방미에 앞서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와 관련해 “역사교육은 결코 정쟁이나 이념 대립으로 국민을 가르고 학생을 나눠서는 안 된다”며 해외순방에 나섰다.
그 이후 대한민국은 온통 국정화 논란에 빠져 버렸다. 노동개혁을 비롯한 4대 개혁과제와 경제활성화 등 그동안에 강조되었던 국정과제는 갈 길을 잃었다.
이제 대한민국 정치는 과거의 낡은 정치를 또 답습하고 있다.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보다 이념을 중심으로 두 진영이 무한투쟁의 길을 가고 있다. 그토록 낡은 정치를 벗어나 생산적인 정치를 하자고 했겄만 또 다시 정쟁정치로 날을 새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박 대통령은 취임 4개월 만인 지난 2013년 6월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교육현장에서 진실이나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으며, 2014년 2월 교육사회문화 분야 업무보고에서도 “정부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에 사실오류와 이념편향 논란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며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실에 근거한 균형 잡힌 역사 교과서 개발 등 제도 개선책을 마련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2015년 10월 12일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이른바 “역사교과서 발행체제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현행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검인정 체제를 폐지하는 것이다. 11월 초 확정고시 될 예정이다. 그려면 정부는 내년 1학기까지 현장 검토본 제작을 마쳐 2학기에 일부 학교에서 시범수업을 진행한 뒤, 2017년부터 전국 모든 중고교에 국정교과서를 배포할 계획이다.
현행 검정 체제에서는 중학교 9종, 고등학교 8종의 교과서를 민간 출판사들이 발행했지만 앞으로는 교육부 산하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가 개발을 맡아 ‘하나의 교과서’만 허용하게 된다. 지난 1974년 유신체제에서 처음 도입된 이후 41년 만이자, 2007년 폐지 이후 8년 만의 부활이다.
교육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4개국 가운데 국정 교과서를 발행하는 나라는 터키와 그리스, 아이슬란드 등 단 3곳뿐이다. 김재춘 교육부차관은 대학교수 시절인 2009년 연구 보고서에서도 “국정 교과서는 독재국가나 후진국가에서만 주로 사용되는 제도인 반면 검·인정 교과서는 이른바 선진국에서 많이 사용하는 제도”라고 지적했다. 혹자는 ‘이제 대한민국은 국정 교과서를 채택중인 북한의 길을 다시 따르게 됐다.’며 비분강개하고 있다.
그러나, 박근혜대통령은 취임 초반부터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급기야 교육부는 대통령이 해외순방을 떠나기 하루 전에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발표했고, 대통령은 해외순방 떠나며 다시한번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조했다. 그리고 새누리당은 15일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당론으로 정하는 결의대회 성격의 의원총회를 열었으며, ‘우리 아이들이 주체사상을 배우고 있다’는 식의 과격한 발언을 내뱉고 있다.
대한민국이 일순간 비정상적인 국가를 향해 가고 있다. 이에 새정치연합은 장외투쟁과 함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를 위한 전면전에 나서고 있다. 대한민국 정치권에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다. 결국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의 진영을 결집시키기 위한 무한투쟁에 돌입한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인과 정치권에 요구한다. 당장 지금부터 누구라도 먼저 낡은 이념투쟁을 즉각 중단하라고 선언하라. 그리고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로 돌아가자고 제안하라. 지금까지 추진해왔던 정부여당의 국정과제와 야당이 주장했던 경제민주화와 민생문제로 돌아가라. 얼마전 여야 원내대표가 ‘경제민주화·민생안정 특별위원회’를 국회에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여야가 모처럼 머리를 맞대고 국민이 공정하고 정의롭게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 진정성있는 논의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인한 이념투쟁은 청와대와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대표의 권력투쟁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정국 주도권을 쥐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라고 본다. 최근 김무성 대표와 문재인 대표는 연속적으로 세 가지 문제에 합의했다. 어떻게 보면 그동안 여야가 이 세 가지 문제에 합의를 도출하기란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연속적으로 세 가지 현안이 합의를 이루었다.
하나는 국회법 개정이다. 둘째는 안심번호에 의한 국민공천제이고 세째는 ‘경제민주화·민생안정 특별위원회’의 국회설치다. 국회법 개정은 청와대의 견제를 받으며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되었던 사안이다. 여야가 공천방안을 합의하는 것도 이례적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경제민주화 역시 여야의 해결방안이 첨예하게 갈라지는 현안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 합의가 연속적으로 이루어졌다. 김무성 대표의 입장에선 회심의 카드였다. 하지만 모두가 무산되었다. 국회법 개정은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로 일단락 되었고, 국민공천제는 지금가지 표류하고 있으며, 경제민주화특위도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태로 물건너 가는 형국이다.
김무성대표는 우선 자신이 대선권력을 쥐기 위해선 박근혜 대통령과의 경쟁관계에서 여권의 주도권을 쥐어야 하는데, 그 복안은 야당을 활용하여 우회적으로 박근혜대통령을 견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법개정 합의를 ‘배신의 정치’로 일축했고, 국민공천제 합의는 청와대 관계자를 통해 조목조목 비판하며 사실당 무산시켰고, 이번 경제민주화특위도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태로 무력화시켰다.
세 가지 사안 모두 합리적인 입장에선 보면 모두가 박근혜 대통령이 독선에 가까운 결정을 내린 것이다. 아마도 박근혜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는 참모진 중에 고도의 정략적 판단을 내리는 비선참모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일관성을 가질 수 없다.
결론적으로 다른 이슈는 모르겠지만 이번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너무 나갔다. 청와대와 여당의 권력투쟁에서 대통령이 주도권을 쥐기 위해 대한민국 정치와 국민을 두 진영으로 나누어 싸우게 만든 것이다. 백번 양보해도 잘못된 일이다.
다시 한번 간곡히 요청한다. 여야 모두 더 이상 낡은 이념투쟁을 중단하자고 선언해라. 그리고 역사교과서 문제는 학계와 시민사회가 보다 성숙한 자세로 ‘집단지성’을 발휘해 대한민국 100년 미래를 생각하는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교육계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선진국이 교과서 국정화는 후진국이나 독재국가에서 하는 제도라고 하는데 대통령의 결단이라고 밀어붙이는 것은 결국 오만이다.
<홍준일 조원씨앤아이 정치여론연구소 소장>
경희대학교 일반대 학원 정치학 석사
조원C&I 정치여론연구소 소장
노무현대통령 청와대 정무행정관
국회의원연구단체 한국적 제3의길 연구위원
민주당 전략기획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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