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10/07/26 (9)
세상을 널리 이롭게하라
- 지역현안에 대한 심도있는 이해와 정책개발 노력 강릉대학교 지역개발학과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지역현안에 대한 보다 심도있는 이해와 정책개발을 위해 공부도하고 자료도 모으고자 한다. 아마도 박사논문은 강릉시의 가장 중요한 현안이나 종합적인 발전방안을 중심으로 만들 계획이며, 보다 실용적으로 만들어서 강릉시민과 쉽게 교감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우선, 강릉시의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강릉시의 성장동력을 만들어내고, 강릉발전의 핵심요소를 찾아내려 노력하려 한다. 아마도 우리지역은 경포를 중심으로 국민관광단지를 형성함으로써 관광을 산업화하는 방안이 가장 중요하며, 둘째는 최소 2000명 이상의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기업을 유치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관광산업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저탄소이며 고..
- 민주당 강릉시위원회의 조직 재건을 위해 지난 총선 이후 지역위원장 공모에 신청했고 민주당 강릉시 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막상 강릉시위원회를 맡고보니 강릉 민주당의 현실 상황은 너무 어려웠고 조직을 다시 재건하는 것이 급선무임을 깨닫게 되었다. 우선 각급 위원회의 건설을 통해 조직을 완성하고, 각급 조직별로 정기적인 회의와 일상사업을 만들어내는 것이 시급하게 요청된다. 과거 민주당 활동을 하셨던 분들과도 연락하고 새롭게 신규 당원들의 입당운동을 전개하며 강릉시위원회의 일상사업과 목적사업을 만들어 냄으로써 강릉에서 민주당의 존재감과 위상을 높이는 것이 시급히 요청되고 있다. 존경하는 강릉 시민 여러분, 그리고 민주당의 당원 동지 여러분 민주당 강릉시위원회를 건설하는데 많은 참여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보..
흔히들 '벽보'를 붙였다고 말한다. '벽보'를 붙였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 '지도자'의 길을 가겠다는 고행을 결심하는 것이다. 정치란 국민의 꿈을 비전으로 만들어내고, 그 비전을 실천하기 위해 국민들의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고 결국 하나의 통합된 힘으로 모두가 하나같이 그 비전을 향해 혼신하도록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도전의 길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지도자의 변하지 않는 원칙과 신뢰이다. 그래서 18대 총선에서 나의 슬로건은 '창조와 통합'의 정치였다. 사람들의 꿈을 비전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창조'와 사람들의 마음을 연결하는 '통합'의 정치를 선언하고 약속했다. 지난 총선에서 나는 나를 선택해달라고 말하기 보다는 강릉시민의 자존심을 지키기위해, 강릉시민의 발 밑에서 겸손한 자세로 함께 호홉하지 않고,..
2007년 9월 청와대 정무행정관을 그만두고, 강릉에 내려왔다. 이해찬대통령후보 특보로 강릉에서 이해찬후보의 승리를 위해 일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강릉에서 이해찬후보가 좋은 성적을 거두기 힘들다고들 했다. 그러나 나는 이해찬후보의 정치철학과 비전에 동의했고 그 누구보다 한나라당과의 대결에서 가장 본선경쟁력있는 후보로 이해찬후보를 선택했다. 그리고, 경선승리를 위해 하나하나 준비해갔다. 그런데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를 만들었다. 경선 최초로 강원도에서 이해찬후보가 1위를 차지했고, 특히 강릉에서도 예상을 뒤엎고 이해찬후보가 1위를 차지했다. 경선전에 우리의 승리를 의심했던 몇몇 지역선후배들과 친구들이 우리의 승리, 나의 승리를 치하했다. 나와 함께했던 친구들도 기뼈했고 나 역시 청와대를 그만두고..
2006년 3월 청와대로 발령을 받았다. 새로운 경험이다. 국정운영의 최고 정수리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새벽 5시 혹은 6시에 출근을 시작해서 끝없는 보고서와 싸운다. 국회, 정당, 정부에서 끝임없이 돌아가는 정치상황을 점검하고, 보고하고, 대통령님의 국정운영철학과 방향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끝임없이 노력한다.매일 매일 사람을 만나고, 보고서를 읽고 쓰고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계속되는 스트레스와 싸운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커가고 하루 하루 떨어지는 임무를 해결하느라 깊이있게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없다. 청와대에서 일한다는 것은 자신의 분야에서 훈련되고 숙성되어 있는자가 이곳에 와서 자신의 혼신을 뿜어낸 후 그 역량이 소진되면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고도의 능력과 ..
강릉포럼을 준비하며 노무현 대통령 당선 그리고 우리들은 많은 선택의 갈림길에 놓였다. 청와대에 들어가는 사람, 새천년민주당의 당직자, 정치조직을 만드는 사람, 지역으로 내려가 출마를 준비하는 사람 등 당시 나 역시 많은 고민을 했다. 그리고 지역출마를 결정했다. 겁 없는 결정을 내렸다. 그때 나이 35세였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대통령의 당선만으로 새로운 정치와 정치혁명이 가능하지 않으며, 노무현대통령과 함께했던 사람들이 지역으로 내려가 출마하고 새로운 정치혁명과 정당개혁을 위한 노력에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많은 사람들이 지역으로 내려갔다. 결국, 나는 강릉경찰서 앞에 ‘강릉포럼’이라는 사무실을 개소하고,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얘기하는 새로운 작업을 시작했다. 강릉의 민주개혁세력을 결집시..
경선을 승리하고 나는 새천년민주당 기획조정국에서 일을 하게되었다. 처음으로 집권여당의 당직자로 중앙당의 당무를 기획조정하는 전략부서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많은 두려움이 있었다. 오래된 당무경험을 갖고 있던 기존 당직자와 풋내기 당직자로써 당내에서 노무현후보의 정치적 철학과 비전을 확산하고 대선승리를 이끌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다른 동료들이 퇴근한 후에도 나는 오랫동안 남아 보고서와 씨름했다. 당시 만들었던 보고서의 내용은 지금 하나도 기억이 안난다. 선배국장님의 지시에 따라 무엇인가 많은 보고서를 생산했지만 아마도 나의 생각보다는 자료를 정리하고 요약하는데 더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한번은 나의 보고서 당대표에게 ..
2001년 대선이 임박하면서 새천년민주당 대통령경선이 준비되고 있었다. 당시 이인제, 한화갑, 노무현, 김근태, 정동영 등 대선후보군들이 회자되고 있었고 이인제대세론이 서서히 일고 있었다. 당시 나는 자연스럽게 노무현, 김근태 그룹의 움직임을 민감히 살펴보고 있었고, 당시 이인제대세론에 맞서 범민주단일후보 혹은 김근태-노무현단일후보론이 서서히 머리를 들고 있을 때다. 그리고 각각의 캠프들이 서서히 구성되고 있었다. 간혹 선배들과 지인들의 캠프합류 소식들도 전해듣곤 했다. 당시 나는 확고했다. 노무현을 후보로 만들어야 한다. 88년 청문회에서 받았던 강한 인상,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헌신적 활동, 낡은 정치와의 끊임없는 투쟁 등 나는 노무현은 국민의 원치과 상식의 기반위에 있는 진정한 정치인이라는 점에 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