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사전’이라는 파격적인 주제에 숨겨진 인류애에 대한 공감으로 일평균 만여 명에 달하는 관람객이 방문해 명실상부한 국제비엔날레로써 입지를 굳힌 강원국제비엔날레에서 꼭 보아야하는 작품은 무엇일까. 강원국제비엔날레 큐레이터 3인 유리, 이훈석, 조숙현 큐레이터가 비엔날레에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작품을 추천한다. 유리 큐레이터는 국제적으로는 인지도가 높지만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아랍현대미술계를 대표하는 작가 3인을 꼽았다. 와엘 샤키, 아크람 자타리, 왈리드 라드가 그들이다.
와엘 샤키(Wael Shawky)는 세계적인 명성의 이집트 작가로 아민 말루프(Amin Maalouf)의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The Crusades through Arab Eyes)>(1986)에서 영감을 받아 서구의 방식으로만 읽히는 십자군 전쟁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를 근거로 십자군 전쟁의 복합적인 역사, 정치, 사회적 맥락을 연구하여 <십자군 카바레(Cabaret Crusades)> 3부작을 선보인다. <십자군 카바레>는 마리오네트 인형극과 뮤지컬로 연출된 영상작품으로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십자군 전쟁의 역사를 좀 더 친근감 있게 관람객들에게 다가선다. 국제적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아크람 자타리(Akram Zaatari)와 왈리드 라드(Wallid Raad)는 레바논 출신 작가로 1975년부터 1990년까지 일어난 레바논 내전에 대한 아카이빙 작업을 통해서 서로 다른 시각으로 작품세계를 구축해왔다. 오는 5월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 앞두고 강원국제비엔날레에서 미리 관객들과 만나는 아크람 자타리는 <Untold>라는 작품을 통해서 우리가 모르는 아랍의 현실을 보여준다. 안보 문제로 이스라엘에 구금되어 있는 팔레스타인, 시리아, 레바논 출신의 정치범들이 몇 차례의 단식 투쟁 끝에 6개월에 한 번씩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권리를 얻어내었고, 초상화 같은 사진과 메모가 자타리의 시선을 통해 관객들과 만난다. 왈리드 라드(Walid Raad)는 카셀 도큐멘타와 뉴욕 MoMa에서 선보였던 Index XXVI 시리즈를 강원국제비엔날레에서 새로 제작하여 Index XXVI: Red and Yellow 작품으로 선보인다. 작가는 찢겨지듯 부서진 거대한 캔버스를 통해 레바논 내전으로 갈기갈기 찢겨진 전쟁의 상흔을 보여주지만 캔버스 위에 아카이빙 된 두 명의 레바논 화가를 통해서 레바논 미술은 아직도 건재하다는 듯 역설적으로 표현하였다. 아랍의 현실은 여전히 전쟁, 테러, 난민문제로 국제뉴스를 장식하지만 이와 반대로 두바이, 아부다비, 이스탄불 등지에서 성장하는 미술시장은 아랍의 현실과 대조적이기도 하다. 이훈석 큐레이터는 러시아혁명 지도자 레닌의 정치 팜플렛 <무엇을 할 것인가?>와 같은 이름을 붙인 러시아 예술가 단체 슈토 뎰라트와 카자흐스탄이 낳은 세계적인 작가 알마굴 멘리바예바의 작품을 추천한다. 슈토 뎰라트는 1991년 구소련 페레스트로이카 시절 소련 민중이 쿠데타 세력에 승리한 사건과 2009년 여름 베오그라드 유니버시아드 당시 일어난 정치적 탄압, 러시아의 거대 에너지 기업인 가스프롬사에 대한 실제 문서를 다룬 사회참여 뮤지컬 3부작을 선보인다. 알마굴 멘리바예바가 출품한 <Kurchatov 22>는 다채널 영상 및 다중 사운드 설치 작품으로, 과거 소비에트 연방 ‘철의 장막’ 중심부에 위치한 한 지역의 암호명에서 제목을 가져왔다. 해당 지역은 1948년 스탈린과 베리야의 철권통치기에 카자흐스탄 북서 지방에 세워진 통제구역이었고, 40여 년 동안 군사 및 과학 목적으로 456차례의 핵실험이 이뤄졌다. 그 규모는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의 무려 2500배에 달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카자흐스탄 사회에 집단적 트라우마를 제공한 이런 사건들이 환경과 토착민에게 미친 영향과 경험 속으로 관객을 인도한다. 조숙현 큐레이터는 한국 작가 전제훈, 임흥순, 고등어의 작품을 추천했다. 전제훈 작가는 탄광촌의 삶을 날 것 그대로 전하는 탄광촌 광부이자 사진작가다. 갱도에서의 삶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그의 작품에는 동료 광부들의 삶이 여과 없이 녹아있다. 광부들이 옷을 벗고, 밥을 먹고, 작은 불빛에 의존해 앞으로 나아가며, 때로는 카메라 앞에서 익살스러운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정부의 폐광 정책으로 어쩌면 마지막이 될 탄광의 광부세대로서, 작가는 광산 안의 일상적인 모습을 진솔한 삶의 예술로 승화하여 기록하고 있다.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은사자상을 받은 임흥순 작가는 <비념(Jeju Prayer)>으로 관객들과 만난다. <비념>은 제주도의 4.3사건과 함께 강정마을의 이야기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다.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에 살고 계시는 강상희 할머니의 남편 김봉수 씨는 4.3으로 희생되었다. 한편 해군기지 문제로 떠들썩한 서귀포시 강정마을에는 ‘4.3의 원혼이 통곡한다’와 같은 수많은 현수막이 걸려 있어 역사적으로 시간차를 두고 벌어진 제주 4.3과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시사한다. 카메라는 매일 밤, 잠자리 밑에 녹슨 톱을 놓고 잠드는 강상희 할머니의 모습을 통해 가늠할 수 없는 깊은 슬픔과 역사적 진실을 추적한다. 고등어 작가는 화려한 기법 없이 미술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연필 드로잉을 통해 신체가 가진 질감과 무게, 운동감과 움직임을 표현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엷은 밤>은 진정으로 관계하지 못하는 남자의 신체가 ‘신체성’을 잃어버리는 과정을 담았고 <몸부림_611>은 용산 참사와 밀양 송전탑 사건 현장에 있었던 용역들의 움직임을 담은 작업이다. 유리 큐레이터는 추천의 이유로 “요즘 현대미술은 동시대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이슈를 주제로 작품세계를 구축해나간다. 자칫하면 현재 일어나고 있는 뉴스를 보는듯 하지만 미술은 저널리즘과 확연히 구별된다”고 강조하였다. “작가는 동일한 사건이라도 여러 개의 시선으로 해석하고, 상상한다.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서 접하는 아랍세계는 전쟁의 상흔으로 가득찰 것 같지만 아랍작가들이 제시한 작품을 보면 다양한 시각과 상상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조숙현 큐레이터는 “현대사회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전쟁과 기아, 난민, 인종차별, 여성억압 등의 문제가 만연한데 이를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직설적이고 은유적인 예술언어를 통해서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작가와 작품을 선정했다”는 말로 추천의 변을 대신했다. 한편 강원국제비엔날레2018은 패럴림픽이 끝나는 3월 18일까지 진행되며, 강릉녹색도시체험센터를 지나는 문화올림픽무료셔틀버스와 시내순환버스(202, 202-1)가 20~30분 간격으로 운영된다. 관람은 무료이며,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www.gwibien.com)를 참조하면 된다. 한정복 기자 gn3369@naver.com <저작권자 © 강릉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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