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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비용 1조원대 사상 최대 ‘票시장’ 열린다
선거는 시장이다. 4년에 한 번, 5년에 한 번 서는 가설시장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년에 한 번꼴로 전국 규모의 선거가 치러진다.
선거시장에서 풀리는 것은 사람과 말(言)만이 아니다. 엄청난 돈이 풀린다. 이 시장에 정치컨설팅회사, 여론조사회사, 홍보회사, 유세차량 대여업체 등이 모여든다. 또 빈 사무실이 선거 캠프로 사용되고, 동네 인쇄소가 돌아가고, 식당도 활기를 띤다.
6월 2일 우리나라 선거 사상 처음으로 8가지 선거가 동시에 치러진다. 사상 최대의 선거시장이 선 것이다.
후보자만 1만5000여명
6월 2일 제5회 전국동시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은 각자 8명을 선출해야 한다. 광역단체장(광역시장·도지사), 기초단체장(구청장·시장·군수), 시·도 광역의회 의원(지역+비례), 시·군·구 기초의회 의원(지역+비례)을 뽑는 지방선거와 함께 교육감, 교육의원 선거도 진행된다. 7월부터 광역의회에 설치되는 교육위원회의 과반수를 구성할 교육의원 선거는 처음이다. 교육감 선거도 전국 규모로는 처음 치러지는 것이다. 이날 하루 모두 3990명이 선출된다(표 참조).
2006년 5월 31일 제4회 지방선거에는 1만2227명이 후보로 나와 3872명이 선출됐다. 평균 경쟁률 3.2대 1. 이번에는 교육감과 교육의원 선거가 있어 후보가 더 늘 전망이다. 2008년 창당된 자유선진당의 가세도 후보 수를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6·2 지방선거 출마자가 1만5000명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후보 한 명 한 명이 적게는 4000만원(기초의원 평균)에서 많게는 15억원(광역단체장 평균)까지 선거비용을 쓴다. 법적으로 허용된 금액이 그렇다는 얘기다. 후보들이 이번 선거에 풀어놓는 돈은 전체적으로 얼마나 될까.
법정선거비용 9000억원
6·2 지방선거를 치르기 위해 선관위가 편성한 예산은 7800억원. 그 가운데 3000억원은 투·개표 관리, 위법행위 단속, 홍보 등에 쓰는 순수 선거관리 비용이다. 나머지 4800억원은 선거비용 보전액. 득표율이 15%를 초과한 후보는 선거비용 전액을, 10∼15%를 득표한 후보는 50%를 돌려받을 수 있다.
4회 지방선거에서 선관위가 선거비용 보전액으로 지급한 돈은 2000억원이었다. 그러니까 득표율 10%를 넘은 후보들이 합법적으로 쓴 선거비용이 ‘2000억원+α’라는 것이다. 득표율 10% 미만에 그친 군소 후보들의 선거비용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전체 선거비용에 좀더 근접한 자료는 선관위에 신고된 선거비용 지출액이다. 4회 지방선거 출마자 1만2000여명이 신고한 선거비용 지출액은 총 4062억원이었다. 여기에는 여론조사 비용과 같이 보전 대상이 아닌 곳에 쓴 돈, 경선에서 탈락한 예비후보들이 쓴 돈, 그리고 불법적인 곳에 쓴 돈 등은 빠졌다.
2006년 지방선거 선거비용 제한액은 6913억원이었다. 모든 후보자들이 법적으로 허용된 선거비용을 다 쓰면 그 정도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후보들이 실제 썼다고 신고한 액수는 4062억원에 그쳤다. 제한액의 58.8%만 사용했다는 얘기다.
6·2 지방선거의 선거비용 제한액은 9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교육감 선거의 법정 선거비용은 시·도지사 선거와 동일하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시·도지사 후보들의 선거비용 제한액은 1000억원이었다. 서울시교육감 후보라면 38억원 정도까지 지출할 수 있다. 후보가 5명이라고 가정하면 서울시교육감 선거에만 190억원이 사용될 수 있다. 총 82명을 뽑는 교육의원 선거에서 후보들이 사용 가능한 돈도 1000억원가량으로 추산된다.
실제 선거비용은 1조원대
여기까지는 합법적인 비용에 관한 것이다. 선거가 많이 투명해졌다고 하지만 실제 선거비용은 이보다 더 많다는 게 선거 전문가들 의견이다. “법정 선거비용의 배 이상 쓰는 게 보편적”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다. 물론 법정 선거비용을 다 쓰지 않는 경우도 있긴 하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봐서 실제 선거비용이 법정 선거비용보다 크다는 데 반론을 제기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법정 선거비용만 잡고, 여기에 컨설팅비 여론조사비 등을 합할 경우 후보자들이 6·2 지방선거에 쓰는 돈은 간단히 1조원을 넘는다. 선관위가 편성한 3000억원의 선거관리 비용, 각 정당에서 지출하는 신문·방송 광고비와 경선 비용까지 계산에 넣는다면 그야말로 엄청난 돈이 이번 선거에 투입되는 것이다.
정치컨설팅회사 e윈컴의 김능구 대표는 “후보자 수와 법정 선거비용을 따져볼 때 이번 선거에 들어가는 돈이 1조원은 넘을 것으로 본다”며 “그 가운데 인건비로 들어가는 것이 30%, 선거 캠페인 산업 쪽으로 들어가는 돈이 70% 정도 된다”고 말했다.
선거시장 강자, 정치컨설팅회사
1조원 넘는 돈이 지방선거에서 풀린다. 이 돈은 어디로 흘러갈까. 출마자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은 정치컨설팅회사다. 지방선거에는 정치 신인들이 많이 나서게 마련이다. 출마자 중에는 선거법도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선거 전문가들의 도움이 절실하다.
서울 여의도에 사무실을 둔 자루기획은 직원이 10명인데, 벌써 후보 40명을 고객으로 받아놓았다. 홍준일 공동대표는 “최근에 사람(선거 전문가)을 보내달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지방선거는 후보자들이 너무 많이 나오기 때문에 홍보 전략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며 “자칫하면 얼굴 한 번 알리지 못하고 묻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최대 정치컨설팅회사로 꼽히는 e윈컴은 이번에 광역·기초단체장급 후보 20명을 컨설팅할 예정이다. 컨설팅을 요청한 후보는 수백명이다. 김능구 대표는 “찾는 사람은 많지만 다 맡을 수 없다”며 “기초의원들은 주로 지방에 있는 기획사들이 담당한다”고 말했다.
후보가 컨설팅을 의뢰하면 보통 컨설팅회사가 그 후보의 홍보물 제작까지 맡는다. 여론조사부터 시작해 선거전략 수립, 홍보물 제작, 유세차량 임대까지 후보자가 선거운동 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거의 모든 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제공해 주는 회사들도 수십개 된다.
한 정치컨설팅업체 홈페이지에 게시된 선거비용 지출 품목은 다음과 같다. 현수막, 사진 촬영, 명함, 선거벽보, 선거공보, 선거공약집, 신문·방송 광고, 어깨띠, 유세차량, 인터넷 광고, 모자, 전화홍보 시스템. 이런 다양한 선거상품들이 컨설텅업체 주도로 소비된다. 그래서 선거시장은 컨설팅업체를 중심으로 형성된다. 조사나 홍보, 유세 등은 컨설팅의 하청 형식으로 움직인다.
현재 전국적으로 수백개 정치컨설팅업체가 영업하고 있다. 부동산업계의 ‘떴다방’처럼 선거철에만 사무실을 열었다가 선거가 끝나면 사라지는 회사가 대부분이다. 업계에서는 전체 후보자의 3분의 2 정도가 컨설팅업체를 끼고 선거를 치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ARS 조사 특수
선거는 여론조사에서 시작된다. 한 후보가 한 번씩만 여론조사를 한다고 해도 1만5000번이다. 예비후보로 등록하지 않은 사람들도 여론조사를 통해 출마를 저울질해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수요 때문에 선거철을 노리고 급조된 여론조사회사들이 많다.
여론조사는 전화설문조사와 ARS(자동응답 시스템) 조사로 크게 나뉜다. 전화설문조사에 비해 비용이 4분의 1∼5분의 1수준인 ARS 조사의 수요가 많다. 그날 판세를 그날 확인할 수 있다는 것도 ARS 조사의 매력이다. ARS 회사인 더피플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1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장강직 대표는 “후보자 1만명이 평균 2회 조사(회당 100만원)를 한다고 가정하면 그 돈만 해도 200억원이 된다”며 “시장이 엄청 커진 건 사실인데, 업체들이 너무 많이 생겨 우리 회사 매출은 예전보다 못하다”고 말했다.
전화설문조사는 당내 경선 시기가 대목이다. 여론조사 결과를 경선에 반영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후보자 중에는 단체장 이상이 주 고객이다. 전화설문조사에 더해 FGI(포커스그룹 인터뷰)까지 실시할 경우 한 번 조사비로 2000만∼3000만원이 든다.
여론조사 시장은 점차 ARS 쪽으로 넘어가고 있다. 이번 선거부터 여론조사 사전신고 제도가 도입돼 전화설문조사 수요는 더욱 위축됐다. 리서치 조사 전문 업체인 TNS 사회조사본부장 이찬복씨는 “이전에는 홍보성 조사도 많았는데 사전신고 제도 때문에 그런 수요는 사라졌다”고 말했다.
유세차 4만여대 공급
유세차량 대여 업체들도 ‘선거특수’를 노리고 있다. 영상음향 전문업체 두리비전은 이번에 유세차 200대를 공급할 예정이다. 이 회사 이경종 전무는 “교육감 선거도 있고, 자유선진당이 새로 생겼기 때문에 지난 지방선거보다 유세차가 배 더 들어갈 것”이라면서 이번 선거에 사용될 유세차량을 4만여대로 전망했다.
서울시장 후보는 혼자 49대의 유세차량을 쓴다고 한다. 지역 연락소마다 한 대씩 두는 것이다. 유세차 1대 비용을 2000만원으로 잡으면 서울시장 후보 1명이 유세차량에만 10억원을 쓰는 것이다. 이는 서울시장 후보 법정 선거비용(38억여원)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정치컨설팅업계에서는 유세차 비용을 전체 선거비용의 3분의 1이나 4분의 1 정도로 잡는다.
4만여대 유세차 공급에 문제는 없을까. 이 전무는 “선거를 앞두고 업체들이 중국에서 차들을 대거 들여왔다”며 “차량 공급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선거 인쇄물 시장도 크다. 후보들마다 공약집, 포스터, 명함 등을 만든다. 선관위에서 인쇄하는 투표용지도 3억장이 넘는다고 한다. 게다가 올해는 ‘종이대란’이라고 할 정도로 종이 공급이 달리는 상황이다. 종이값도 다달이 올라가는 중이다. 범아인쇄 관계자는 “물량을 미리 확보해 놓지 않는다면 공급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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