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거리②] 솔숲 사이에 축적된 저항의 바람 소리초당마을2 ; 초당의숙을 허(許) 하라!
초당마을은 소나무 숲으로 유명하다. 소나무와 관련된 지명이 많은 이유이다. 현재의 강릉고등학교 교정에 위치하는 ‘금송(禁松)’이란 지명이 대표적인 예이다.
금송은 땔감이나 재목 등의 용도로 벌채가 금지된 소나무들을 보존하고 무차별적인 벌목을 방지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지정된 ‘일종의 보호구역’이다.
‘위에서 아래로’ 강요된 환경보호가 언제부터 기원했는지 알 길 없으나, 적어도 조선시대에 지방 관아들이 금표 – 출입금지 표식 –과 산지기를 관리했던 듯싶다.
이른바 ‘인디언 보호구역’ 등에서 알 수 있듯, 지극히 인간적이거나 자연친화적인 취지였을지 모를 ‘보호구역’의 이면에는 ‘사회통제’를 위한 교묘한 장치들이 깔려 있기 쉽다.
이러한 국가적 조치들로 서민들의 생활공간이 심각하게 침해되었고 아래로부터 불만이 고조되었음은 익히 알려진 바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동북아전쟁들, 특히 이른바 병자호란 이후에 거세진 자본의 물결에 의해 가중되었던 듯싶다.
사사로이 금표를 두고 서민들의 출입을 제한하거나 본격적으로 공유지를 사유화했을 때였다. 정치적 격변과 자연 재해 등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잘 보존된 솔숲을 고려하면, 초당마을은 생존 혹은 저항과 생태친화적인 환경 사이의 복잡하고도 미묘한 함수를 현명하게 해결했던 사례이자 대안적 미래일지 모른다.
국가 주도의 ‘자연보호’를 단순히 폄하하거나 ‘생존을 위한 파괴’를 선택한 기존의 사회운동을 무의식적으로 동경하지도 않았던 초당마을, 그곳을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관점에서 혹은 사사로운 이기심에서 훼손하는 것은 그저 근시안적이 아니라 중대 범죄 행위이다.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했지만, 초당마을이 20세기 강릉에서 사회운동의 온상으로 자리매김했던 것은 아마도 대칭적이든 아니든지 간에 상관없이 전통적으로 축적된 균형감이었을지 모른다.
초당마을에는 다른 세계를 바라보는 아주 큰 창이 있다.
사진 : 호서장서각 터 |
지명 유래만큼 초당을 화제의 중심으로 이끄는 것이 교육문화이다. 강릉에는 한국 최초의 사설도서관으로 알려진 호서장서각(湖墅藏書閣)이 있었다. 경포 호수 주변에 허균이 설립했던 사설도서관이었다.
허균이 지은 ‘호서장서각기’에 따르면, 그는 만 권 서책 속의 좀 벌레처럼 여생을 보내고 싶어 할 정도로 책읽기를 좋아했다. 그런 탓에 산, 호수, 바다 등이 어우러진 환경에 “별장 누각”을 삽화처럼 두고 묵향과 문향이 밴 공간을 창조하고자 했던 듯싶다.
누구나가 쉬이 책을 빌려 읽을 수 있으며 지식을 갈구하는 자라면 서로 소통할 수도 있는 그러한 공간 창출이 허균의 취지였을지 모른다.
‘잃어버린 학교’ 풍속도
허균의 대한 동정과 연민이었을까? 아니면 그에 대한 존경의 표시일까? 초당의숙이 설립되었다. 을사조약 직후에 대중들을 ‘계몽’할 목적으로 세워진 “근대식 야학교”였다.
최돈철 등의 강릉 유지들이 야학 운동을 주도하였던 결과다. 국어, 한문, 지리, 역사, 산수 등의 교과목과 더불어 외국어와 체육에 비중을 두었다. 오늘날이라면 비판되고 해체될 법한 서구의 ‘계몽주의적’ 유산이나 패러다임이지만 그 당시 사회 현실을 고려하면 이해됨직한 움직임이었고 심지어 진취적인 입장이었다.
그런 서구화된 사고 틀이나 서구 문물을 근접하여 수용하기 위해 강조된 것이 영어 교육이었다. 몽양 여운형이 초당마을에 초빙되어 각별한 인연의 고리로 연결된 계기 역시 초당의숙에서 발견될 수 있다.
또 다른 역사의 각운일까? 강릉고등학교 야구부가 연습하는 그 자리에서 몽양이 야구를 소개했다고도 한다. 야구 외에도 축구나 스케이트 등이 체육 과목을 통하여 전파되었다. 심신단련이 주된 취지였다. 체육은 또한 단합과 민족의식 고취로 이어졌다.
동진학교와 화산학교 등과 함께 조직되어 송정이나 초당 솔밭에서 개최된 ‘연합 체육대회’에서 명백히 드러났었다. 이런 풍속도는 시공간적 차이에도 강릉 사회 전반에 걸쳐 면면이 이어져 오고 있다.
초당의숙을 허(許) 하라!
사진 : 울산매일신문 |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을 채우려는 취지는 일제의 사회통제와 식민화 계획에 배치되었기에 오래지 않아 사립 학교령(1908년)이란 명목에 의해 희생되었다.
하지만 열강의 제국주의에 대항하고 민족의 역사의식을 신장시키는 토론문화나 ‘애국 가요 보급 운동’ 등에서 초당의숙은 살아남았다. 초당의숙이 폐교된 이후 출신 학생들이 주축이 된 노동 야학회인 ‘창동회(昌働會)’가 조직되었고 신문화 보급과 강릉의 항일운동 및 사회운동에 기여했다.
그 학생들이 주로 그의 제자였던 탓에, 여운형 역할이 강조되는 것이 당연할지 모른다.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일부 학자들도 있다. 그들에 따르면, 초당마을이 사회주의의 작은 온상으로 기능했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설정된 여운형 일화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한다.
그의 행적이나 강릉에 머문 기간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여운형 문제는 어쩌면 전체 퍼즐 맞추기의 일부일 뿐일지 모른다. 일제강점기 이후 초당마을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사회운동의 역사나 문화를 제대로 알기 위해 풀어야 할 과제들은 여전히 많다.
잃어버린 강릉을 재현하고 그것의 편향된 의식에 적절한 균형을 주는데 초당마을은 단초를 제공할 듯싶다.
살아남은 자의 고뇌
아직도 초당마을에는 과거의 교육 전통이 살아 숨 쉰다. 인근의 학교들과 연수원 및 홍보관 등에서 발견된다. 불행히도 강릉 교육대학이 사라졌다. 단순히 초당마을에서 현 강릉원주 대학교 강릉 캠퍼스로 이전되었던 것이 아니라 여러 면에서 느껴지는 일종의 단절이었다.
교복 자율화가 시행되었던 80년대의 어느 해였다. 강릉 교육대학의 전신은 강릉 사범학교(1946-1963)였다. 이것은 초등 교사 양성이라는 취지에서 수시로 바뀌었던 교육 정책의 역사를 단순히 응축한 문장이 아니다. 강릉 사범학교가 적어도 강릉 및 인근 지역에 끼쳤던 문화적 영향이 초당마을에서도 계승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강릉 사범학교는 강릉의 교육문화를 창달했을 뿐 아니라 강릉을 ‘문학 혹은 문예의 도시’로서 성장하도록 밑거름을 준 터전이었다. 그런 전통을 계승하던 ‘배움의 전당’이 현재의 강릉원주 대학교로 재조직되었다.
행정적 혹은 정치적 이유였든 강릉 교육대학은 통폐합의 미명 아래 폐교처럼 처리되었다. 그것을 계승했던 대학교에는 거의 단절된 희미한 흔적만 있을 뿐이다.
그것의 물리적 공간을 강릉 고등학교가 차지했으나 문화사적인 공간을 회복하기에는 미흡하기 그지없다. 초당마을이 그 대학의 운명을 답습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두렵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면 왜일까?
또 다른 초당
초당에는 또 다른 초당이 있다. 아호가 초당(艸堂)인 신봉승 작가이다. 안타깝게도 지난 봄 지병으로 타계했지만, 그는 마을의 심장부에 여전히 살아 있다. 아니 어쩌면 초당마을이 그의 내면세계에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에게 초당마을은 단순히 시적 영감의 대상이거나 소재만이 아니라 에너지의 원천이자 ‘소울 메이트’일 듯싶다.
그 향은 솔에서 더욱 짙게 나타나기 쉽다. 초당마을 소나무 “떼”는 잃었던 것을 보상이라도 받을 듯 “금송”이나 “심은 솔” 등의 보호구역을 도처에 갖고 있다. 그런 탓에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는 아픔과 미움으로 가득했던 나날을 보내야 했다.
솔밭에 둘러앉아 더 나은 천하를 꿈꾸던 벗들이 떠나거나 사라지고 심지어 “소개령”으로 강제 추방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절친한 벗들이 친구-동무 진영으로 나뉘어져 미움을 쌓아가는 과정도 용서와 화해를 주고받는 감격도 목격했다.
수령이 오래된 소나무 한 그루마다 애환이 있고 추억이 있으니 그런 소나무에게 이름을 주고 이야기를 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소나무를 훼손하지 않은 채 축적된 이야기들은 강릉 사람이나 이방인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싶다.
최우영 기자 bg243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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