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이야기

(시사in) 강릉에 여의도 2배 면적 소나무 사라져

세널이 2011. 8. 31.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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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 여의도 2배 면적 소나무 사라져
강릉 곳곳의 소나무가 마구 뽑혀 외지로 팔려나가고 있다. 강릉시가 내건 ‘솔향 강릉’이라는 구호가 무색할 정도다. 최명희 시장 취임 이후 여의도 2배 넓이의 소나무 숲이 사라졌다.
[206호] 2011년 08월 20일 (토) 00:17:57 정희상 기자 minju518@sisain.co.kr
예부터 예향과 문향의 도시로 불리던 강원도 강릉 지방은 2006년에 ‘솔향’이라는 수식어가 추가됐다. 최명희 강릉시장이 지역 대표 수종인 소나무를 앞세워 ‘솔향 강릉’이라는 시정 캐치프레이즈를 내걸면서부터다. 최 시장은 소나무 우거진 강릉을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시범 녹색도시’로 만들겠다고도 선언했다.

그로부터 5년여가 흐른 요즘, 이 지역 소나무는 어떤 대접을 받고 있을까. 강릉시는 구정면 용소골에 2008년부터 ‘솔향수목원’이라는 소나무 숲을 조성하고 있다. 올 연말까지 100억여 원을 들여 완공하겠다는 솔향수목원은 최 시장이 기치를 든 ‘솔향 강릉’의 완결판이자 전시장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최근 들어 강릉 지역 곳곳의 아름드리 자연산 소나무는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다. 솔향 강릉 구호 뒷전에서는 수많은 소나무가 뿌리째 뽑혀 조경수로 외지에 팔려나가고 있다. 강릉시의 한 시민단체 대표는 “최명희 시장 시절 내내 대관령 밑에서 매일 새벽 소나무를 실은 10t 트럭과 트레일러들이 마치 군대 행렬처럼 길게 늘어서서 출발을 대기하는 모습이 장관을 이뤘다. 지난 5년간 강릉의 소나무가 그렇게 전국 각지로 팔려나갔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정희상
대관령 인근 도로에서 뿌리째 뽑힌 소나무가 트럭에 실려 외지로 옮겨지고 있다.


현지 추적 조사 결과 이런 지적은 과장이 아니었다. 현행법상 ‘산지전용허가’를 받으면, 별도의 허가나 신고절차 없이 산지전용에 수반되는 소나무를 뿌리 뽑아(굴취하여) 외지에 팔아넘길 수 있다. 최명희 시장이 들어선 4년 동안 강릉시청에서 ‘산지전용허가’를 내준 건수는 총 700건이 넘는다. 면적으로는 서울 여의도 넓이의 2배에 육박하는 소나무 숲이 사라졌다.

현재 최명희 시장이 조성 중인 구정면의 솔향수목원도 소나무 외부 유출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강릉시는 솔향수목원에 인접한 사유지(밤나무 밭)를 주차장 대지로 확보한다는 명목 아래 50~100년생 자연산 소나무가 우거진 왕산면 대기리 산186번지 일대 시유지를 민간 업자에게 넘겼다. 2008년 10월 당시 시유지였던 이곳과 지역 임업 후계자 이 아무개씨가 소유한 구정면 토지를 교환한 것이다.

이어 강릉시는 이씨에게 2008년(대기리), 2009년(송현리), 그리고 2010년 7월12일(대기리) 세 차례에 걸쳐 교환받은 시유지 및 기존 소유 임야의 아름드리 소나무를 뽑을 수 있도록 굴취 허가를 내주었다. 이씨는 이들 소나무를 강원랜드 등 외지로 팔아넘겼다.

당시 이씨가 강릉시에 신고한 소나무 굴취 목적은 ‘관상수 재배’ ‘운재로 건설’ 등이었다. 그렇다면 이씨는 50년 이상 된 소나무 수백 그루를 굴취해 강원랜드 등에 팔고 그 자리에 대신 무슨 관상수와 조경수를 심은 걸까?


1만여 평 소나무 숲이 황량한 사막으로

8월10일 오후 기자는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에 자리한 소나무 굴취 현장을 찾았다. 정식 진입로조차 없어서 인근 주민 농지에 소나무 굴취용 임시 도로를 낸 상태였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장관을 이루던 이 일대 임야에는 진입로 인근에 소나무 몇 그루만 남겨져 있었다. 외부에서 굴취 현장을 한눈에 알아볼 수 없도록 눈가림을 해둔 것이다. 그 안으로 들어가니 마치 굴삭기로 산 능선 몇 개를 완전히 파헤친 듯, 족히 1만여 평(약 3만3000㎡)은 돼 보이는 임야에 황량한 토사 더미가 쌓여 있었다.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있던 임야가 사막처럼 변해버린 것이다. 산 능선을 따라 굽이굽이 펼쳐진 굴취 현장에서는 풀 한 포기 찾아볼 수 없었다.

흉물스럽게 변한 엄청난 토사 더미는 주변 밭과 계곡으로 마구 흘러내려 올여름 집중호우가 할퀴고 간 상처를 그대로 드러내주었다. 아름드리 소나무 몇 그루가 아직도 드문드문 남아 무차별 굴취의 참상을 말해주는 듯했다. 소나무 중간에는 굴취업자들이 친 밧줄이 축 늘어져 있었다. 규정상 3m 이내여야 하는 진입 도로 폭은 10m가 훨씬 넘어 보였고, 급한 곳은 경사가 40°를 넘는 듯했다. 굴취 현장을 전혀 마무리하지 않아 한눈에도 토사 유출과 산사태 등으로 인한 재해 위험이 심각히 우려되는 상태였다.

기자가 만난 강릉시청 공무원과 인근 주민은 이곳 대기리의 소나무 굴취 과정을 도운 공무원으로 김호기 전 자치행정국장과 현재 다른 지역 소나무 비리에 연루돼 구속 중인 강릉시청 산림과 민 아무개 전 과장을 꼽았다. 특히 최명희 시장의 오른팔로 꼽힌다는 김 전 국장은 시유지와 사유지 교환 당시 자치행정국장으로 간여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지난해 여름 자기가 소나무 관련 주무 부서장이 아니었는데도 이곳 업자의 소나무 굴취 과정에 편의를 봐주라고 인근 대기리 주민에게 다양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한 주민은 “강원랜드에 소나무 납품하는 업자들이 길이 없어서 소나무 굴취가 지연된다고 하니까 시청 김호기 국장이라는 공무원이 동네 사람 여러 명을 통해 길을 내주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라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김호기 전 국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런 일이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한 조경업자는 이곳에서 뽑힌 소나무가 한 그루당 500만~700만원에 강원랜드 등지로 팔려나갔다고 전했다. 아직 팔리지 않은 나머지 소나무는 현재 왕산면사무소 앞 가식장에 이식돼 있다고 한다. “농림 지역인 대기리 산186번지 일대는 임목 축적도가 80%로서 트레일러로 실어 날라야 할 만큼 큰, 직경 70~80㎝에 이르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꽉 차 있었다. 보통 소나무 한 그루가 350만원짜리인데 강원랜드에는 700여 만원에 팔렸다고 한다.”

왕산면 송현리 산168-1번지 일대 임야 2필지도 비슷한 경우다. 2009년 1월 이곳 산림업자는 강릉시에 산림 훼손 목적을 ‘육림용 운재로 개설’이라고 제출했다. 나무를 벌목한 뒤 그 목재를 실어 나르는 길을 내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현장을 둘러본 결과 소나무만 다 캐내갔을 뿐 목재를 운반하는 길은 없었다. 소나무를 파내서 외지에 팔기 위한 요식행위로 ‘운재로’라는 엉뚱한 목적을 적어냈던 셈이다. 송현리 산 밑 농가 주인 이 아무개씨는 “임도를 내겠다면서 아름드리 소나무를 다 파가더니 뗏장(흙이 붙어 있는 잔디 조각)만 심어두고 떠났다. 허가 낸 면적을 넘어 위아래 수십m 등성이까지 굵은 소나무를 다 파간 채 그대로 방치하기에 항의했지만 묵살당했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송현리 소나무 굴취 현장에 오르니 능선을 따라 15~20m 폭으로 약 2㎞에 걸쳐 소나무만 굴취해간 흔적이 남아 있었다. 또 양옆으로 폭 수십m에 걸쳐 소나무를 파내가 이곳 굴취 목적이 도로 개설이 아니라 오로지 소나무 반출이었음을 보여줬다.


검찰 “소나무 비리 첩보 입수해 조사 중”


운재로란 나무를 벌목한 뒤 제재소로 싣고 나오기 위한 길로 규정상 폭 3m가 넘으면 안 된다. 하지만 현장에서 본 길은 20m 폭에 가까웠다. 나무는 벌목이 아니라 뿌리째 굴취해갔다. 강릉시에서 운재로로 허가를 내줬으면 공무원이 벌목이든 굴취든 사후 확인을 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흔적 또한 없었다. 한 조경업계 관계자는 “소나무 굴취는 산지전용허가 사항이다. 경사도와 임목 축적, 진입로 여부, 주변 인접 토지 주인의 의견 등 전반적 현장 상황을 공무원이 확인해야 한다. 또 굴취 후 나무 몇 그루가 나갔는지도 현장 확인을 해야 한다. 그러나 두 곳 현장 모두 허가해준 면적 이상을 마구 굴취했어도 강릉시청이 그냥 눈감아줬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정희상
50~100년생 아름드리 소나무 수백 그루가 굴취된 뒤 폐허로 방치된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일대.


이에 대해 강릉시청 측 한 관계자는 “임업 후계자의 소나무 굴취는 허가 사항이 아니라 신고 협의 사항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애초의 굴취 목적대로 굴취가 진행됐는지 확인하는 것은 고사하고 아무런 사후 조처도 취하지 않은 채 굴취 현장을 방치해둔 것은 직무 유기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많다. 소나무 굴취 및 판매는 거액의 이권이 오가는 사업이라는 점에서 관련 공무원과 업자 사이의 유착 및 비리 의혹이 이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강릉시 소나무 굴취 인허가 과정에서 이 같은 의혹은 끊이지 않았지만 비리가 적발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지난봄 춘천지검 강릉지청 수사로 비리의 한 자락이 드러났다. 강릉시 성산면 산북리 4만5000여 평(약 14만8700㎡)의 임야에 있는 소나무를 굴취하는 과정에서 조경업자 이 아무개씨가 시청 산림과 민 아무개 과장에게 수천만원대 금품을 건네고 훗날 6000만원대 임야까지 주기로 약정한 혐의로 구속된 것이다. 구속된 이씨는 당시 소나무 굴취 목적을 ‘조경과 수목 재배’로 신고한 뒤 허가받은 경계 너머까지 대량으로 소나무를 파내 외지에 판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와 민 과장은 1심에서 각각 3년과 3년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조경업자 이씨는 골프장 조성용이라고 주민에게 홍보한 뒤 소나무를 굴취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가 구속되기 전 포항 출신 박명재 전 행안부 장관이 강릉시에 내려와 시청 산림과 공무원들을 따로 불러 만나고 간 것에 대해서도 뒷말이 무성하다. 강릉시청의 한 공무원은 “박 전 장관이 휴가차 강릉에 내려와 산림과 직원들을 불러내 만났다. 성산면 소나무 굴취 현장에 골프장을 만드는 데 힘이 돼줄 것처럼 이야기했다”라고 말했다.

강릉 곳곳의 소나무 굴취 현장을 둘러본 결과 최명희 시장이 내건 ‘솔향 강릉’이라는 구호가 무색했다. 소나무를 파내서 서울·경기 등 아파트 단지와 공원 조경수로 반출해가는 것이 솔향 강릉의 숨겨진 모습이었다. 한 강릉 시민은 “앞으로는 솔향 강릉을 말하면서 뒤로는 소나무를 다 팔아먹도록 방치하고 있다”라고 개탄했다.

그런가 하면 솔향수목원에 인접한 강릉시 구정면 일대 주민들은 요즘 때 아닌 몸살을 앓고 있다. 동해임산이라는 회사가 이곳에 골프장을 설립할 수 있게끔 추진하는 양해각서를 강릉시와 체결했기 때문이다. 동해임산은 최 시장의 선거캠프 회계 책임자였던 고 아무개씨가 본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회사이다. 이 골프장 후보 대지에는 40년 이상 된 소나무가 그득하다. 자신의 선거캠프 측근이던 이가 연관된 업체에 최 시장이 골프장 시설을 허용할 경우 또 한번 대규모 소나무 굴취가 이뤄질 게 불을 보듯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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