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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스스로 해산하거나,해체되거나…보수정치의 존립 조건을 묻다. 본문

세널리 정치/정국분석

국민의힘 스스로 해산하거나,해체되거나…보수정치의 존립 조건을 묻다.

세널리 2025. 12. 4.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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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당사에서 특정 정당을 둘러싼 ‘해산’ 논쟁은 낯선 장면이 아니다. 다만 과거에는 주로 급진 세력, 이념적 극단에 자리한 정당이 그 대상이었다면, 오늘의 논쟁은 제1야당이자 보수정치의 간판 정당인 국민의힘을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스스로 해산해야 한다”, “위헌정당 해산 대상이다”라는 주장이 더 이상 주변부의 과격한 구호가 아니라, 대중적 여론조사 문항과 정치적 시나리오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하나의 단정이 아니라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 과연 국민의힘은 앞으로도 한국 민주주의의 한 축으로 존속할 수 있는가, 아니면 언젠가 어떤 방식으로든 해체·해산의 길을 걷게 될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는 한국 보수정치, 나아가 정당 체계 전체에 어떤 파장을 남길 것인가.



1. ‘해산론’이 밈을 넘어 정치적 경고가 되기까지

오늘의 ‘국민의힘 해산론’은 하루아침에 등장한 것이 아니다. 반복된 국정 실패, 계엄·내란 논란, 정교유착 의혹, 지도부의 책임 회피, 중도·청년층 이탈 등이 누적되면서, 유권자의 언어가 점점 더 과격해진 결과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여론지형의 흐름은 이를 뒷받침한다.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 국민의힘은 장기간 20%대 중반 안팎에 머물며, 정당으로서 최소한의 ‘집권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지지율 수준 자체보다 더 문제인 것은, 민주당과의 격차가 고착화되는 방향으로 굳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지율의 숫자만으로 이미 유권자 다수가 “지금의 국민의힘”을 보수정당의 대표 주자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국민의힘, 존재 자체가 문제 아니냐”는 정서는 점차 ‘해산론’의 형태를 취하기 시작했다. 계엄·내란 프레임이 본격적으로 제기되자,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세력이 정당의 옷을 입고 존속해도 되는가”라는 질문이 뒤따랐다. 정교유착 의혹이 더해지면서, “국가와 종교, 권력과 사익이 뒤섞인 구조를 청산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정당 해산 아니냐”는 주장도 등장했다.

물론 해산론에는 과격한 정서와 정치적 과장이 섞여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보다 냉정한 물음이 숨어 있다. 바로 “이 정당이 한국 민주주의에서 더 이상 어떤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는가”라는, 정당 존속의 최소 조건에 관한 질문이다. 해산론은 그런 점에서 정치적 혐오의 표현이자 동시에, 정당 스스로가 되돌아보지 못한 자격 검증의 언어이기도 하다.



2. 스스로 해산, 강제 해체, 사실상 해체 – 세 갈래 길

정당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다. 스스로 해산하거나, 제도적 결정에 의해 강제 해체되거나, 선거 패배와 분열 속에서 ‘사실상 해체’되는 길이다. 국민의힘을 둘러싼 오늘의 상황 역시 이 세 갈래 중 어느 방향으로든 흘러갈 여지를 안고 있다.

1) 스스로 해산 후 재창당 – 가장 도덕적이지만 가장 어려운 선택

첫 번째 시나리오는 자발적 해산이다. 당이 스스로 해산을 선언하고, 1선 책임자들이 전면 퇴진한 뒤, 이름·강령·조직·인적 구성을 모두 새로 짜는 방식이다. 이 경우 국민의힘은 “우리는 더 이상 과거의 그 정당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덕적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계엄·내란 논란, 정교유착 의혹, 국정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제도적으로 인정했다는 메시지를 던질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공학적으로 보자면, 이 선택은 현실성이 가장 낮다. 현역 의원들의 의석과 공천권, 지방조직의 권한이 모두 원점에서 재조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존 지지층 일부의 이탈도 감수해야 한다. “스스로 해산”은 언제나 가장 도덕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택해지는 경우가 거의 없는 이유다. 기득권이 온전히 자기 손으로 자기 권력을 내려놓아야 하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2) 헌법재판소에 의한 강제 해산 – 법의 판단, 정치의 격렬한 후폭풍

두 번째 시나리오는 헌법재판소의 위헌정당 심판을 통한 강제 해산이다. 헌법 제8조는 민주적 기본질서를 훼손하는 정당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해산을 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은 그 규정이 추상적 선언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 바 있다.

국민의힘을 둘러싼 정황, 특히 계엄·내란 관련 녹취나 문건, 정교유착 의혹, 혐오와 배제를 부추기는 정치행태에 대해 야권 일각에서는 이미 “위헌정당 해산” 청구를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만약 실제로 청구가 이루어지고, 헌법재판소가 본안 판단에 들어간다면, 한국 정치와 헌정사에 매우 큰 파장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십수 년 전 통합진보당 사례와의 비교는 필연적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대상이 제1야당이라는 점, 수백만 보수 유권자가 실질적인 이해당사자로 엮여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 후폭풍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가능성이 높다. 해산 결정이 내려지든, 기각이 되든, 어느 쪽이든 ‘정치적 심판’ 논쟁은 끝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3) 선거 패배와 분당을 통한 사실상 해체 – 가장 현실적인 경로

세 번째 시나리오는 선거를 통한 ‘사실상 해체’다. 법적으로는 정당이 그대로 남아 있더라도, 정치적 실체로서의 영향력과 정체성이 무너지는 방식이다.

내년 지선과 그 이후의 전국 단위 선거에서 연속적인 패배가 이어질 경우, 지도부 책임론과 계파 갈등은 폭발할 것이다. 개혁보수와 강경보수, 수도권과 영남, 중도지향 세력과 극우적 정체성을 자임하는 세력 간 갈등이 분당과 신당 창당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때 ‘국민의힘’이라는 간판은 남더라도, 유권자가 체감하는 보수 정치의 실체는 이미 다른 당들로 옮겨가는 구조를 띨 수 있다.

이 시나리오는 법적 해산이나 자발적 해산보다 언뜻 완만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현실적인 경로다. 한국 정치의 정당 교체는 대개 선거 패배와 분열, 재창당의 반복 과정을 통해 이뤄져 왔기 때문이다.



3. ‘국민의힘 이후’를 준비하는 보수정치의 재구성

중요한 것은, 어느 시나리오를 선택하느냐보다 ‘그 이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이다. 국민의힘이 해산·해체되든, 이름만 남은 채 사실상 영향력을 상실하든, 한국 정치에서 보수정치의 필요성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견제와 균형, 대안 세력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문제는 그 ‘보수’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꾸려는 세력인가 하는 정체성에 있다.

첫째, 보수정치가 끊어내야 할 것은 “권력의 자기보호를 위해 헌정질서를 유린하는 태도”다. 계엄과 내란, 공포정치의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세력이 스스로를 보수라 부를 수는 없다. 보수의 이름으로 지켜야 할 것은 헌정질서와 법치,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이지, 특정 정권과 세력의 이해가 아니다. 이 지점에 대한 분명한 선긋기 없이, 새로운 보수정당이 신뢰를 얻기는 어렵다.

둘째, 보수정치는 더 이상 ‘지역 기반+조직 동원’의 방식으로 존속할 수 없다. 중도·청년층은 이미 그런 정치에 등을 돌렸다. 노동시장, 기후위기, 불평등, 돌봄, 디지털 전환, 지방소멸 같은 의제에서 “변화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라는 보수의 언어를 제시해야 한다. 변화 자체를 부정하거나, 특정 집단의 불안을 정치적 동원에 활용하는 방식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셋째, 보수정치의 재편은 결국 중도층의 재배치와 맞물릴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 해산론에 공감하는 유권자 가운데 상당수는, 민주당이나 진보정당의 지지자로 완전히 이동하지 않은 중도·무당층이다. 이들은 “위험한 보수는 싫지만, 건강한 보수는 필요하다”는 이중적인 정서를 동시에 갖고 있다. 새로운 보수정당이 등장한다면, 이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책임성, 공정성, 혐오와 구분되는 보수적 가치(절제, 안정, 지속가능성)를 다시 언어화해야 한다.



4. “아무것도 바꾸지 않은 채” 버틸 수 있는 시간은 끝나간다

결국 핵심은 책임의 문제로 돌아온다. 국민의힘을 둘러싼 ‘스스로 해산하거나, 해체되거나’라는 문장은, 정당의 존속 자격을 둘러싼 민심의 마지막 통보에 가깝다.

정당은 존재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유권자의 신뢰와 동의가 사라진 정당은, 법적으로 해산되지 않더라도 이미 정치적으로 해체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 점에서 국민의힘 앞에 놓인 선택은 사실 단순하다.

첫째, 스스로 책임을 인정하고 구조를 바꾸는 길.
둘째, 외부의 심판과 선거 패배를 통해 강제로 변화를 당하는 길.

어느 길을 택하든 공통된 결론은 하나다. “아무것도 바꾸지 않은 채”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이미 끝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해산이냐 존속이냐를 가르는 기준은, 결국 그 정당이 지금 이 순간부터 무엇을 어떻게 바꾸려 하는가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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