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당마을에 숨은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따라 골목길을 누비고 그 길에 연결된 ‘바우길’이나 호변을 걷는 것은 초당마을의 맛을 더욱 풍미지게 한다. 단순히 ‘시장이 반찬’이어서가 아니다. 솔향기에 취하고 정감어린 마을의 표정과 정취를 자아내는 풍경에 일단 빠지면 절로 발길이 닿는 곳이 즐비한 맛 집들이다. 갈등의 도가니에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다. 맛 집들을 제대로 탐방하자면 하룻밤 여정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시작은 뭐니 뭐니 해도 두부라며 작정해도 고민을 깡그리 지울 수 없다. 저마다 독특한 맛을 간직한 음식점들이 많은 탓이다. 또한 시간대에 따라 최고의 맛을 즐길 수 있는 순간들이 집집마다 다소 차이가 있는 탓이다. 예컨대, 어느 집 순두부는 해돋이 무렵에 절정에 이르고 다른 집은 가벼운 산책 후 먹는 아점(brunch) 메뉴가 일품인가 하면 다소 나른한 오후에 즐기기 좋은 곳이 있다. 어느 한 집 어느 한 순간의 맛으로 초당두부를 평가한다는 것은 지극히 현학적이거나 경솔한 자세이기 쉽고 후회를 남길 일이 될 성싶다.
여느 음식과 마찬가지로 초당두부 또한 사람들의 입맛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그것에 따라 영향을 받으면서 변화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변화 자체에는 빠르게 혹은 더디게라는 리듬이 있다. 아직도 변화하지 않았거나 더딘 변화를 겪는 것이 인근 지역에서 유기농 재배된 콩, 새벽녘의 맑은 물, 청정해수, 정성과 손맛, 집안의 비법 등이다. 우선, 초당두부 보존회에 속한 두부 장인들은 인근 지역에서 유기농법으로 재배된 콩인 ‘백태’ – 색깔에 따라 노란 콩, 쓰임새에 따라 메주콩 등으로 불리는 콩의 일종 -을 고집한다. 그렇기에 ‘우리 콩’을 위험의 여지가 있는 수입 콩이나 유전자적으로 변형된 콩들과 구별하는 것은 “초당두부촌” 장인들에게 요구되는 필수 덕목이다. 초당두부에서 콩이 특히 고소한 근거이고 두부의 높은 소화력을 현상 유지하거나 향상시키는 비결이다. 독특한 색과 질감을 제공하는 다른 콩들이 초당두부를 다양화시키는데 적절한 대안들 중 하나인지는 궁금하다. 콩 원산지가 한반도로 여겨지고 주요 콩 수출국인 미국이 수천 종의 콩을 수집했던 만큼 다양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음식에서 간과할 수 없는 요소가 물이듯, 초당두부에서도 청정자연수는 아주 중요하다. 특히 화학공정을 거친 응고제거나 식품 첨가물이 아닌 바닷물을 사용한다는 것은 초당두부의 전통이자 특징이다. 최근 청결과 위생을 한층 강조하여 해양심층수를 사용하는 것은 리어카로 바닷물 길어 나르던 세대보다 더 개선된 측면이다. 반면, 정성과 손맛은 예전만 못하다는 일부 견해가 있다. 입맛의 변화 탓일 수도 있으나 입맛의 세계적인 추세를 고려한 변화에서 기인하기 쉽다. 즉, 정성과 손맛이 제 맛을 보존하려는 노력과 세계음식문화로 거듭나려는 실험적 시도와 연구로 대체되면서 재현되고 있다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비법에도 적용 가능할 듯하다. 비법을 단순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이 축적되는 요리 방법이나 식품영양학적 연구를 반영하면서 지속적으로 보완하고 개선한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맛 경쟁을 벌이면서 초당마을에는 다채로움이 생기고 있다.
초당두부 탐방 첫날에 ‘토박이 할머니 순두부’ 집을 찾은 것은 우연이거나 재수이다. 경포 팔경 중 하나인 환선정을 둘러보고 ‘당재’를 넘으니 중봉에 걸린 노을마저 어둠에 밀려난다. 허기가 몰려오는데 토박이 할머니 순두부 간판이 첫 눈에 띈다. 더욱 두드러진 것은 어린 시절 동화 속의 삽화처럼 채색된 부자간의 훈훈한 정을 새긴 목조 구조물이다. 허름한 듯 소박한 입구를 들어서니 황토벽 사이로 콩 볶는 향과 시골집 내음이 물씬 풍겨 온다.
콩비지 쿠키는 이미 동이 난 상태인지 빈 통만 반기고 있다. 초당두부 보존회에서 발간한 ‘초당두부 체험장’ 팸플릿을 훑으면서 메뉴판을 곁눈질한다. 음식문화가 관광휴양도시의 “부수적인 요소”가 아니라 주된 “목적이며 테마”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하지만 메뉴판에서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빈약해 보이는 사진 탓이다. 특히 모두부의 풍성함이 결여된 느낌이다. 실물이 사진만도 못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음식이 나오면서 공연한 기우임을 깨닫는다.
토박이 할머니 순두부 집에서 처음 맛본 것이 초두부이다.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던 명동 순두부 탓에, 순두부란 이름이 뚝배기에 맵게 끓인 찌개로 인식되기가 다반사이다. 조갯살, 굴, 돼지고기나 계란 등이 곁들여진 찌개로 설명되기도 한다. 하지만 순두부는 원래 따뜻한 초두부에 양념장만 넣어 먹던 음식이다. 어떤 이는 순두부를 두부 만드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맛보는 진미’로 묘사한다. 그렇기에 초당두부 장인들이 순두부를 초두부라 불렀던 것은 그럴듯할 뿐 아니라 헷갈림을 방지하는데 유용하기까지 하다. 그것이 초두부를 복원하고자 했던 이유들 중 하나라는 주인의 설명이 뒤따른다. 하얀 도화지 같은 초두부에서 초당두부의 또 다른 미래를 그리고자 했다는 대목에선 그의 장인 정신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속내 깊이만큼 깊은 맛이 깔끔하고 부드럽기가 그지없다. 그 이미지란 짭짤한 바다 내음에 밋밋하고도 고소한 콩 향이 어우러져 깔끔하게 균형을 맞춘 뒤, 송화처럼 부드러운 “두부 꽃”으로 구체화한 느낌이다. 민간 전통의 초두부와 사찰음식의 비교하는 측면에서, 조포사로 지정되었던 천은사(삼척 소재) 인근의 두타(산) 순두부와 그 맛을 비교하는 것은 색다른 즐거움일 수 있다.
초당두부 테마 거리의 다른 음식점들처럼, 토박이 할머니 순두부 집에도 허균의 자취는 사라지지 않은 듯싶다. 허균이 좋아했다던 맛,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연하고 매끄러운 바로 그 맛을 간직한 듯싶다. 두부조림 요리에서 특히 그러하다. 두부 한 편을 맛보는 순간, 딸랑이 종을 흔들며 “입 안에 살살 녹는 두부사려!”를 외치던 두부장수에 대한 추억이 살아난다. 아이스크림이나 솜사탕보다 부드럽고 건강한 맛이 옛사랑처럼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허균 생애에 강릉에서는 다소 단단한 ‘경두부’ 혹은 ‘행주’(行廚)두부가 주요 품목이었지만 그의 신원을 회복하거나 그를 기념하기 위한 일환에서 초당두부 맛이 변화된 탓일지 모른다. 해저심층수가 배어 있어서인지 쓴 맛을 살짝 지우며 입 안을 감도는 맛이란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가 드물 듯싶다.
토박이 할머니 순두부 집에서 초당두부와 다른 강릉 음식들의 미래와 가능성을 확인한다. 무지 토속적이고 입맛에 무난한 강릉 음식이 가장 세계적인 음식문화에 근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하나이다. 정성으로 맛을 개발하고 사랑방 손님 맞듯 좀 더 친절하고 후하게 내외국인 방문객을 대접한다면 그것의 문을 활짝 열어젖힐 미래가 또 하나이다. 이른바 ‘향토음식’을 재구성하려는 여정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후속작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참여를 기대하면서 바라보는 달빛이 밝다.
최우영 기자 bg243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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