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재보선 승리해도 박수 받기는 힘들것
대한민국 정당사는 ‘이합집산’과 ‘당명변경’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다 보니 정치인이 무수한 당적을 갖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 내용을 면밀히 따져보면 순리에 역행하며 명분도 없는 탈당이 너무 많다. 정동영도 그 명분없는 탈당에 동참하고 말았다.
정치인의 역사도 마찬가지로 변화무쌍하다. 한 때는 ‘변화와 혁신’의 주인공으로 화려하게 등장하지만, 시대가 변함에 따라 낡은 정치인으로 한 순간 전락한다. 모두가 시대와 동떨어진 선택과 욕심에서 시작된다. 마치 스타 연예인이 자신을 관리하지 못해 한 순간에 추락하듯이정치인 역시 국민과 호홉하지 못하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이번 4월 재보선에서 ‘정동영’의 무소속 출마는 그야말로 핫이슈다. 그는 또 한번의 탈당을 기록하며, 새정치연합을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지난 2009년 전주 덕진 탈당에선 당을 잠시 떠난다고 했는데, 이번엔 돌아간다는 기약도 없다. 정동영에 대한 평가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과거와 비교하면 박수보다 걱정과 비판의 목소리가 더 높다.
배반과 명분없는 탈당
정동영이 정치를 하는 동안 여러번의 탈당과 복당이 있었다. 그 중에서 3번은 확실한 배반과 명분이 없는 탈당이다. 첫째는 스스로 만들고 부순 열린우리당 해산이다. 둘째는 대선 패배 1년 후 전북 전주 덕진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것이다. 셋째는 4월 재보선에서 관악을 무소속후보로 출마한 것이다. 왜 배반과 명분없는 탈당인가?
첫째, 열린우리당 해산은 자기부정과 대권 욕심에서 생겼다. 노무현정부 시절 정동영은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하여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열린우리당에서 그는 초대 당의장을 포함하여 2번의 당의장을 맡았다. 또한 열린우리당이 집권당이라 통일부장관까지 할 수 있었다. 그랬던 정동영이 열린우리당 해산의 선봉장이 되었다.
당은 분당의 상처로 분열과 갈등 속에 있는데, 그 창당의 책임자는 또 다시 당을 주도적으로 해산하고 새로운 당을 창당했다. 스스로 만들고 부순 격이다. 그리고, 정동영은 새로운 당의 대선후보가 되었다. 대선은 역대 최악의 결과를 낳고 말았다.
둘째, 전주 덕진에서 무소속 출마 역시 ‘선사후당(先私後黨)’의 선택이었다. 정동영은 1년 전 당의 대선후보였고, 그 패배에 대한 정치적 책임도 자유롭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았다. 당시 지도부와 정동영이 어떠한 관계와 상황이 있었는지, 혹은 지도부가 무능했는지 국민은 궁금하지 않다. 국민은 정동영의 선택을 기억한다.
국민과 당원의 입장에서 그의 행동은 납득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당의 대선후보까지 지낸 사람이 당의 결정을 부정하고, 더 나아가 탈당까지 불사했다. 오로지 자신의 작은 이익만을 고수했다. 정동영은 무소속으로 당선되었고 결국 당에 복당했다. 당은 죽고, 자신의 명예만 지켰다.
셋째, ‘관악을’ 무소속 출마는 가장 명분없는 탈당이 되었다. 모두가 하나같이 그의 결정에 혀를 찬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탈당과 출마인가? 진정 새로운 진보정당을 위해 도구가 되고자 하는가? 그 도구가 꼭 이번 재보선과 관악을의 출마인가? 그동안 탈당과 복당을 반복하고, 지역구를 옮겨 다닌 이유가 정말 ‘진보정당’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나? 정동영에게 묻고 싶다.
탈당과 복당, 진보정당 창당 노력?
또한, 관악을 새정치연합 정태호후보는 무엇인가? 정태호후보는 관악을에서 수차례 고배를 마시며, 끊임없이 도전하여 어렵게 당의 후보가 되었다. 그런데, 당의 오래된 선배이며, 대선후보까지 했던 정동영이 그 자리를 내놓으라고 협박하고 있다. 이것이 신진 정치인 후배에게 정동영이 줄 수 있는 최선인가? 그것이 진보정치인가? 정동영은 지금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
정동영은 김대중정부 시절 천정배, 신기남과 함께 이른바 ‘정풍운동(整風運動)’을 주도했다. 정풍(整風)운동은 중국 공산당 당원재교육 운동에서 비롯된 말로 ‘사회 기풍이나 작풍 따위를 바로잡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에 사람들은 ‘천신정’이라 불렀다. ‘천신정’은 권노갑 등 구동교동계의 2선 후퇴를 요구했고, 새천년민주당의 정치개혁을 위해 달려가는 ‘개혁의 아이콘’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정동영’과 ‘권노갑’의 관계를 잘 알았기에 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았다. 왜냐하면 권노갑은 정동영을 정치권으로 이끌어 주고 도와준 멘토와 같은 선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동영은 권노갑을 공개적으로 망신주며, 2선 후퇴를 이끌어 냈다. 정동영은 정치개혁의 성공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 설명했다.
그런데, 지금 흥미로운 것은 ‘정동영’이 발딛고 서있는 자리다. 한 때는 정치개혁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탈당과 복당을 반복하는 노회한 정치인이 되어버렸다. 정동영이 새로운 진보정당이란 출마 명분을 세웠지만, 국민에게 설득력이 없다. 그는 아마도 4월 재보선의 승부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결정 될 것이라 믿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은 그의 승부와 관계없이 비판적 시선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정동영은 자기를 이끌어주고 키워 준 ‘선배와 동지’를 향해 돌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당은 정동영에게 3선 국회의원, 당대표, 통일부장관이란 과분한 사랑을 주었고, 당 최고의 명예인 대통령후보라는 선물을 주었다. 그러나, 지금 정동영에게서 돌아온 것은 당에 대한 공격과 부정이다. 어느 국민이 이와 같은 배신과 의리에 손을 들어주겠는가?
아마도 4월 재보선 결과가 정동영에 대한 평가가 되겠지만, 승부와 관계없이 그의 행동은 국민에게 쉽게 납득되지 않을 것이다. 만약, 4월 재보선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그의 정치적 행보에 박수를 보낼 국민은 없다. 이제 정동영은 정풍(整風)의 ‘주체’에서 정풍(整風)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정치인의 생명은 끊임없이 국민과 시대정신을 쫓는 것이며, 진솔하게 낮은 자세로 국민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정치인이 자신의 아집과 독선으로 ‘국민과 시대’를 앞서는 순간 그의 운명은 거기까지다. 안타까운 정치현실이다.
[홍준일 조원씨앤아이 전략마케팅 본부장]
[프로필]
조원씨앤아이(http://www.jowoncni.com) 전략마케팅 본부장
새희망포럼 연구소 소장
전)노무현대통령 청와대 정무행정관
전)민주당 강릉시위원장
경희대 일반대학원 신문방송학과 석사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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